한국 기독교의 '부림절' 사건 (1)
2003-10-02 12:41:23 read : 13440
- 한말 이용익(李容翊)과 김영준(金永準)의 기독교인 박멸 음모
구약 성경 에스더서에 보면 사악한 페르시아의 국무총리 하만이 유태 민족을 박멸하려 하였으나, 유태인 출신 왕비 에스더의 담대한 믿음으로 유태인이 위기를 면하고 오히려 하만이 처형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유태인들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부림절'을 지킨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 초기 교회사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1900년에 가을에 일어난 이용익과 김영준의 기독교인 박멸 음모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상)}에 기록된 것을 풀어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해 겨울에 미국인이 경성 시내에 전차를 부설하니 승객이 많은지라 군부대신 이근택(이것은 경무사 김영준을 잘못 기록한 것임)과 내장원경 이용익이 건의하되 전차를 그대로 두면 재원이 반드시 고갈하리라 하여 시민으로 하여금 차를 타지 못하게 하니, 미국인이 탐지하고 황제 폐하에게 아뢰어 (차 타는 것을 금지하지 말라는) 엄한 칙령을 내렸더니, 두 대신은 이를 깊이 원망하여 서양인과 기독교를 함께 멸할 계획으로 이 교(敎, 기독교)의 폐해(弊害)를 황제 폐하에게 거짓으로 아뢰고 칙교(勅敎)를 내려 같은 해 12월 초 1일에 국내에 거주하는 선교사와 예수교도를 일시에 도륙 소탕할 밀지(密旨)를 각 도에 비밀리에 포고하였으니, 당시 교회의 운명이 곧바로 위급에 처해 있었느니라. 이 때에 선교사 어더우드(元杜尤)가 해주에 잠시 머물러 있는데 관찰사 부중에 있는 한 사람이 그 뜻을 알고 (다른 사람을 통하여) 어더우드 군에게 밀고하매 언더우드 군은 즉시 라틴어로 에비슨(魚丕信) 의사에게 전보함으로 미국 공사(알렌)는 폐하를 뵙고 상주하여 엄준한 칙전(勅電)을 각 도에 급히 발하여 외국인과 교도(敎徒)를 도리어 보호하라 함으로 잔혹한 화를 겨우 면하였나니, 이는 옛날 페르시아 시대에 하만이 모르드개와 이스라엘 민족을 소멸하려던 흉악한 책모와 비슷하니라. 당시 교회가 이러한 위기를 벗어난 것은 진실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입음이니라."(79-80쪽)
이 내용은 다시 {사기(하)}에서 몇가지 잘못된 점을 바로 잡으로면서 다음과 같이 보다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처음에 미국인이 경성에 전차를 부설하므로 경무사 김영준과 내장원경 이용익이 건의하되 전차를 그대로 두면 나라의 재정이 기울어 고갈하리라 하여 시민을 타지 못하게 하니 미국인이 탐지하고 황제 폐하에게 아뢰어 엄한 칙령이 내렸더니 김(영준) 이(용익) 두 사람은 이를 깊이 원한을 삼아 서양인 기독교도를 전멸할 계획으로 기독교 폐해를 황제 폐하에게 거짓으로 아뢰고 칙령을 내려 같은 해 12월 1일에 국내에 거주하는 선교사와 기독교도를 도륙(屠戮)할 비밀 지령을 각도에 은밀히 포고하니 당시 교회의 운명이 곧바로 위급에 있을 때에 경성에 주재하는 조선에 먼저 온 선교사 언더우드가 해주에 잠시 우거하더니 관찰부로부터 기독교도 도륙 비지(秘旨)를 각 군에 비밀히 통지하여 비밀리에 거사(擧事)......
같은 군 향장(鄕長) 조 아무개(趙某)가 군의 사무를 겸임 처리하더니, 이 향장은 은율읍교회 영수 홍성서(洪性瑞)와 친 사돈간이다. 혼인한 집이 변을 당함을 긍휼히 여겨 홍성서의 백부에게 비지를 밀고하여 화를 면할 방책을 생각하라고 간절히 권하였더니 홍성서가 이 말을 듣고 그 아들 명기(洪明基)를 해주에 파송하여 선교사 언더우드에게 급히 보고를 전하니 어더우드는 급보를 받고 경성 재중원 의사 에비슨에게 전보로 알려 에비슨으로 미국 공사에게 전하니 미국 공사가 폐하를 알현하고 상주하여 엄준한 칙전(勅電)을 각 도에 급히 발하여 외국인과 교도를 보호케 하니 잔혹한 와를 면하다."(161-162쪽)
당이 이 사건의 주동 인물이었던 이용익과 김영준은 황실의 재정을 확보해 주어 고종의 신임을 받던 친러파 고관들이었다. 이들이 기독교인과 미국인 선교사들을 미워하게 된 이유를 위에서는 1898년 미국이 부설권을 따내 이듬해 5월에 개통한 전차 때문이라고 하나, 이에 앞서 기독교인들이 많이 가담하여 활동하였던 독립협회에서 이들을 탐관오리로 지탄하여 고종의 개인적인 신임에도 불구하고 경질을 당한 적도 있었다. 게다가 마침 이 무렵 청나라에서 외국인과 기독교를 배척하는 의화단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계기로 우리 나라에서도 서양인과 기독교인을 박멸할 계략을 꾸몄던 것 같다. 이러한 음모를 한국인 신자로부터 보고 받고 서울에 알린 언더우드의 부인은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1900년 가을) 해주에서 머무른 지 겨우 며칠 되었을 때에 발 빠른 심부름군 하나가 은율에서 편지 한통을 가지고 도착했다. 그 편지에는 그 지방의 여러 원님들에게 임금의 비밀 명령이 두루 내렸다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그 명령이란 다음 달 초 이튿날 밤(보름쯤 뒤였다)에 모든 유생들은 자기 지역에 서 가장 가까운 사당에 모일 것이며, 그때부터 한거번에 모든 서양인과 서양인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집과 교회와 학교를 때려부수라는 것이었다. 이 소식이 닿은 것은 관아에서 하찮은 직책을 맡고 있는 우리 친구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관리들이 뭔가를 읽고 잔뜩 흥분하고 수런거리면서 그것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잘 간수하는 것을 이상스럽게 생각하고는 대체 거기에 무엇이 씌어 있나를 알아 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는 용케도 남몰래 그것을 읽어 볼 기회를 얻었고, 마침 가까운 자기 친척들 중씨 기독교인이 몇 있었기 때문에 곧장 그들에게 이 끔찍한 소식을 알렸다. 이 식구들 중에서 발이 빠른 젊은이가 당장에 그 명령의 사본을 갖고 우리에게로 왔다. 이 소식을 받았을 때의 우리의 마음은 이루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우리는 최근에 찾아갔던 평화로운 작은 마을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았다. 모두들 아름다운 새 삶에서 기쁨을 찾고, 해를 향해 뻗어 오르는 꽃들처럼 그리스도를 향해 자라던 그 모든 사람들, 얼굴에는 기쁜 희망의 빛을 띄운 채로 행복해 하고 남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않고 친절하던 그 사람들, 노인들,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 의지할 데 없는 여자들, 날을 의심할 줄 모르는 농부들, 이 모든 사람들이 바야흐로 깡그리 멸망할 지경에 맞닥뜨렸다. 우리 자신으로 말하면, 조선에서도 가장 험한 도시 안에 들어 있는 셈이었다. 다른 사람 몰래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 우리는 언제나 온 마을의 관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우리를 붙들어 두려고만 한다면 도저히 빠져나갈 도리가 없었다. 더 곤란한 문제는, 우리 일행에 젊은 여자 두 사람과 어린 아이 하나가 끼어 있다는 것이었다. 원님이 우리에게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우리 신변에는 거의 위험이 없을 것 같기는 했으나 우리의 첫번째 의무는 서울에 있는 미국 공사에게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고, 그것도 서둘러야 했다. 다른 동양의 말이나 서양말로 전보를 보낸다 해도 쓸데없는 짓일 터였다. 한번 의심이 생기면 그것을 조선말로 옮길 길은 얼마든지 있겠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우리는 미국 공사에게가 아니라 해주나 서울 어디에서나 덜 눈총은 받을 만한 우리 선교사 한 사람에게 라틴어로 전보를 치기로 했다. 이 일은 성공했고, 전보는 당장에 미국 공사관으로 전달되었다.
조선 정부의 태도는 언제나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이 소식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그리나 최 근에 중국에서 일어났던 의화단 사건과 비슷 한 것이 여기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기묘한 책동을 일으킬 만한 불교도들이 대궐에서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을 때에, 그리고 조선의 외부에서도 시인한 바이지만, 그런 법령이 자기들도 모르는 새에 내려진 것임이 밝혀졌을 때에 모든 의심이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슷한 방식으로(다시 말해서 기독교인이나 선교사들의 친구를 통해서) 이 소식은 강화도와 평양의 선교사들에게도 전해졌다. 이 명령이 경솔하게 내려진 것이며 곧 후회하게 될 것임은 바로 그 며칠 뒤에 처음의 그 명령을 취소하는 또 다른 명령이 나라 안에 내려짐으로써 분명히 입증되었다. 그때에야 비로소 나는 그 나쁜 소식을 들은 뒤로 처음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었다. 그때에 우리는 작은 일본 기선을 타고 무사히 서울로 들아오는 길이었다. 그 뎡령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붙들렸다. 그들은 처벌을 받았으리라고 생각된다. 조선 관리들은, 그것은 모두 착오였으며 임금이나 정부가 알지 믓하는 새에 내려진 것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변명을 했다."(L. H. Underwood, 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 or Life in Korea, 1904, 249-251쪽)
이 사건 당시 주한 미국 공사는 알렌이었다. 그는 여러 선교사들로부터 이러한 보고를 받자 즉시 대한제국의 외부대신에게 공문을 보내 선교사들과 기독교인들을 보해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1900년 9월 14일자로 주한 미국공사 알렌이 조선 외부대신 박재순에게 보낸 "선교사 및 교민(敎民) 보호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회 제238호
각하;
저는 동봉한 정보의 개요에 각하의 주의를 요청하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가장 믿을만한 미국 선교사로부터 받았는데, 북부 변방에서 일어날 사건의 상황에 관한 것입니다. 특별히 소요가 10월달에 계획되고 있다는 보고에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감리 혹은 의주의 군수가 각하가 나에게 보내겠다고 약속했던 조선인 기독교인의 보호에 관한 지시를 받은 것을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에 각하의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조선 북부 변경의 시골 사람들은 분명히 아직 중국에서 일어난 소요에 대해서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소식을 듣기 전에 그들이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각하께서 이것의 신빙성을 확인하고 상황의 필요에 따라 그러한 소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실 것으로 확신하며 제 임의로 단지 그 정보만을 각하에게 전합니다.
각하에게 경의를 표하며
1900년 9월 14일
호레이스 알렌(Horace N. Alln)
조선 외부대신 박재순 각하에게"
이 공문은 영문과 함께 한문으로 번역되어 첨부되어 있는데 내용이 중복되지만 우리 정부에서 이를 어떻게 이해 했나를 정확히 알기 위해 한문으로 된 것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조회 제 238호
대미(大美) 흠명주차 조선 편의행사 대신 겸 총영사 안(安;알렌)이 조회하는 바입니다. 믿을만한 미국선교사가 보고한 바에 의하면 귀국의 북부 변방 각처에 현재 정황이 점점 긴급해지고 있으며 또한 추수가 끝나기를 기다린 후(음력 10월 중)에 장차 소요가 일어나 각각 내외 교민(敎民;기독교인)들을 축출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전에 본 대신(알렌)이 교민보호에 대해서 간절히 말씀드린 바 있으며 곧 귀 대신(박재순)께서 보호하라는 지시의 전칙(電飭)을 내리겠다고 하셨는데, 의주 군수는 처음부터 이러한 중앙의 전칙이 없었다고 한다고 하며, 또한 민간 물정으로 논하자면 그들이 청나라 일이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를 알지 못하여 오히려 주저하고 있으며, 그러나 지금의 형세로는 큰 소요가 일어나고야 말 것입니다. 이에 조회하오니 청컨대 귀 대신이 번거로우시더라도 조사하고 판단하시어 이러한 일을 미리 예방하여 근심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평양에 사는 선교사 마포(馬布;마펫)의 보고를 참고하시도록 올리니 살펴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조회하는 바입니다.
대한 외부대신 박(재순) 각하에게
1900년 9월 14일"
여기에 첨부된 마펫의 보고 요지는 다음과 같다.
"부(附). 모페드 보고(기독 敎士 敎民의 구류 및 힐난 풍문)
1900년 9월 10일 마펫 목사의 보고
운산(雲山) 광산 지구의 서쪽에 인접한 지역인 구성(龜城)에서 두 지방 관리가 현지 기독교인들을 욕하고 체포하여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관리들은 천마면(天馬面)과 사기면(沙機面)의 집강(執綱)인데 앞에 든 천마면의 집강은 두명의 기독교인을 체포하여 많은 신문을 하고 심하게 때린 후에 석방하였다. 그러나 그는 추수후에 외국인들과 현지 기독교인들을 모아들여 모두 죽이든지 내쫓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의주, 구성, 용천(龍川) 등 변방 지역에서 10월달에 부상(負商)들과 동학도들이 일어나 모든 기독교인들과 외국인들을 살해할 것이라는 보고가 일반적입니다.
동학도들이 북부 지방에서 늘어나고 있으며 그들은 기독교인으로 모여서 자신들의 교리 강론에 참여하기 위해서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척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경의 중국인 의화단은 한국인들이 그들에게 가톨릭 신자나 개신교 신자들을 데려가면 15냥(10원)을 보상금으로 주었습니다.
의주는 상당히 조용하지만 관리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적대적이며 서울로부터 기독교인들을 보호하라는 어떠한 지시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외무대신은 그러한 보호를 허락하는 지시를 보내겠다고 동의했습니다.
상당한 수의 상인들이 나중에 문제가 일어날까 봐 의주를 떠나고 있습니다.
영천에서 폭도가 공격하여 교회를 일부 파손하고 10명의 기독교인들을 잡아다가 그들을 심하게 때리고나서 보내주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지방관에게 그들이 기독교를 박멸하면 않되느냐는 청원서를 보냈습니다. 그 지방관은 '어찌 서학을 하는 오랑캐들을 박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구한국외교문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