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같은 고통과 싸우며...
2003-10-02 21:24:46 read : 10205
박양자 권사 (대구 청송군. 순복음신동산교회)
지옥과 같은 고통과 싸우며
내 어린시절, 마당에 꼬챙이 하나도 제대로 안세우시던 우리 어머니가 어느 전도사님의 딸을 큰 며느리로 맞고 나서는 하루 아침에 마음이 돌변해 미신과 우상을 모두 치워버리고 식구들을 데리고 교회로 나가시는 것이었다. 자연히 나도 식구들을 따라 교회에 다녔다. 교회는 우리 동네에서 삼십리나 떨어진 먼 곳에 있었다. 시내를 일곱 개나 건너야 했다. 교회에 갈 때마다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팠지만 하나님이,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저 교회는 당연히 가야 하는 줄 알고 열심히 다녔다.
그 후 집에 돌아와 있을 때 오빠가 소개해 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는 옛날 부자로 망한 집안의 자손이었다. 내가 그 집으로 시집을 간다 했더니 우리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 일로 언니들한테 맞기도 많이 맞았다. 부자집이 망하면 몇 십년이 걸려야 일어설 수 있는데 어떻게 그런 집에 들어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혼인날 친정식구는 아무도 없었다. 사진관을 빌려 결혼식을 올렸다. 이불도, 옷 한 벌도 제대로 갖추진 못한 혼인이었다. 시집에서 옷 한 벌 해 입으라고 주는 웃돈 천오백원으로 옷은 안하고 신구약 성경을 사서 그 성경으로 언약을 하고 혼인식을 마쳤다. 그때까지 내 속에 큰 믿음은 없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힘이 된다는 근본은 있었던 것이다.
박대는 시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것도 못해간 수모를 말로 다 할 수 없이 받았다. 그래도, 그런 설움과 고통 속에서도 나는 한 번도 실망하지 않았다. 내 몸이 재산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 유년 시절부터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믿음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먼저 심어주셨기 때문이리라. 나는 힘들 때마다 하나님만 찾았다. "하나님! 나 무서워요!" 아이를 낳을 때도,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용서해주세요!" 하고 울부짖곤 했었다.
한데 시집에 들어가 보니 빚이 재산만큼이나 많았다. 차압이 들어온다고 했다. 몸이 재산이라 하고 들어간 나는 죽도록 일을 했다. 시집에서 교회를 못가게 했으므로 성경도 덮어버렸다. 하나님을 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일이 더 급하니 자꾸 일만 했고, 죽을 먹으면서 남의 빚을 갚아 나갔다.
다행히 그 때 하나님께서 재물을 축복해 주셨다. 심는 것마다 말도 못하게 잘 되었고 그 재미로 더 일에 매달려 살았다. 일을 하고 빚을 갚고, 또 일을 하고 빚을 갚는 생활을 수년 동안 계속한 것이다.
그랬더니, 결국 첫아이를 낳은 후부터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몸이 재산이라고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렇게 자신하던 몸은 어느새 부서질대로 부서져버렸다. 허리는 날마다 톱으로 써는 것처럼 아팠고, 하혈도 수시로 쏟아졌다. 그것은 바로 생지옥이었다. 그래도 밭에 나가서 또 일을 했다. 아마도, 하나님은 나의 그런 모습을 보셨는지 모른다. 하루하루를 지옥과 같은 고통과 싸우면서도 삶의 의욕을 잃지 않고 도전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수년을 그랬다.
헛되고 헛되도다
한 번은 아는 집사님이 예언기도를 받으러 가자고 해서 따라갔더니 은사 집사님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대대로 우상숭배를 하는 집안에 내가 복음을 들고 왔기 때문에 수많은 원수 마귀가 나를 죽이려고 덤벼들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므로 죽지 않는다고 하면서 40일 새벽기도를 시작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이튿날부터 새벽기도를 나가는 한편 또 다른 교회에서 하는 집회를 좇아다녔더니 하루는 기도 중에 내 입으로 이런 말씀을 주시는 것이었다. '네가 이 집에 들어오는 날 가브리엘 천사가 같이 와 있었다. 그가 네 출입문에 항상 지키고 서 있다.'
그리고 그 은사자의 말이 맞았다. 그 집에서 잠을 잘 때 머리가 쪼깨지는 것처럼 못견디게 아팠고 눈만 감으면 온갖 무서운 것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달려드는 것이었다. 커다란 뿔이 달린 소처럼 생긴 짐승들이 나를 덮쳐와서 내가 그 뿔을 붙잡고 싸우기도 하고 뱀들을 막 쳐죽이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무지했던 나는 처음에는 너무나 무서웠다.
그 후 또 많은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이었다. 문득 하나님께서 내게 생전 처음으로 전도서의 말씀을 주셨다. '헛되고 헛되니 헛되도다.' 그래도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깨닫지 못하는 나에게 어느 날 다시 골로새서를 읽어보라고 하셨다. 골로새서를 읽어 보니 '네 믿음이 온전하면 너를 통해서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무지한 내게 그렇게까지 깨우쳐 주셨어도 여전히 나는 세상 것을 붙잡고 있었다. 너무나 설움을 받고 시집을 갔기 때문에 재물이 없으면 안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또 넷째를 낳게 되었는데 칠일만에 하혈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 그해 가을에 그 수많은 고추농사가 된서리를 맞아서 모두 삭아버리는 것이었다.
온 집안을 복음으로
넷째를 낳고 몸조리를 하기 위해 친정에 가 있을 때였다. 그때 친정집 옆에 있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다기에 갔다가 마침내 나는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불같은 성령을 받은 나는 몸부림을 치면서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 때 하나님께서 내게 찬송 376장을 주셨다. '내 평생 소원은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불같은 시험 많으나 겁내지 맙시다. 구주의 권능 크시니....'
때로부터 나는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내가 새롭게 변화되고 나니 남편도 교회를 안가고는 안되게 만드셔서 그때부터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이 지금은 장로가 되었다. 한데 그 후 빚을 다 갚고 재물을 복구해서 어느 정도 숨을 쉴 만할 적에 막내 시동생이 들어와서 재물을 달라고 하기에 그에게 넘겨주고 우리는 다시 새 출발을 하였다.
그 뒤에 시숙이 폐병이 들어 또 들어왔다. 부모도 형제도 안받아주는 것을 내가 받아들였다. 그는 폐병 3기였다. 그런 그를 우리 안방에 눕혀놓고 간호를 할 때도 어린 것들이 저희 큰아버지한테 안기곤 했어도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저 어린 것들에게 은혜를 입혀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시숙에게 복음이 들어가고 동서도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
그 후 슬하에 아이가 없어서 이혼을 하고 돌아온 시누이도 우리집에 같이 살면서 간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나의 간호를 받으며 내손에서 떠났다. 시누이가 세상을 떠난 후 시어머니도 "야야 네가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어봐야겠다" 하시면서 예수님을 영접하셨고, 우상숭배가 심하시던 시아버님도 그 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상을 떠나셨다. 막내 시동생은 현재 장립 집사이다.
이번에 하나님께서 갑자기 내게 금식기도를 시키셨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21일 금식을 하였다. 장기금식이라 그런지 입이 쓰고 좀 힘들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때를 따라 힘을 주시고 은혜를 주셔서 강남금식기도원에서의 하루 다섯 번의 예배는 빠지지 않고 드릴 수 있었다.
특히 금식 마지막 날에는 주께서 내게 요한복음 15장 7절 말씀을 주시면서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주셨고, 앞으로는 더 관대하게 마음을 높이고 새 일을 향하여 마음이나 물질이나 하나님을 부요케하는 일을 위하여 크게 결단하게 하시니 감사 감사할 뿐이다.